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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년까지 즐겁게 살기

나에게 낚시란 취미는

(1991~2009)

 어릴 적부터 가족을 따라 낚시를 다니곤 했습니다. 강가에 발을 담그고 견지낚시로 피라미를 잡기도 하고, 댐이나 저수지에서 붕어 낚시하는 가족의 모습을 구경하기도 했습니다. 그리 잦은 일은 아니었지만 항상 낚시를 갈 때마다 느껴지는 자연, 물소리, 작고 신비로운 생명체를 고스란히 느끼며 그 어린 나이에도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는 낚시를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애초에 조용하고 차분하게 혼자 있기를 즐겼던 저에겐 참 좋은 시간들이였습니다.

산천어 낚시를 떠난 삼척의 오십천에서

 

 

(2010~2013)

 서울에서 중, 고등학교 생활을 했기에 낚시에 대한 막연한 동경만이 남아 있었고 대학을 경북에 있는 곳으로 가게 되면서 자유롭지만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대학교 동기와 슈퍼에서 파는 싸구려 낚싯대를 사서 공강시간에 블루길을 잡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점점 찾아보니 나름 학교 주변은 배스낚시로 유명한 장소였고 그렇게 인터넷으로 루어(가짜 미끼)를 사서 배스 낚시를 혼자서 다녀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배스와 가물치를 잡고 너무나 짜릿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마 몇 번씩이나 입질도 못 받아본 후 잡은 고기라서 더 그랬을 거예요.

처음으로 혼자 잡아낸 배스와 비린내로 악명이 자자한 강준치

 

 

(2013~2014)

 대학 생활 동안 낚시라는 취미에 푹 빠지게 되었으나 졸업 이후 임용에 실패하면서 다시 서울로 가게 되었습니다. 독서실을 다니며 임용 준비를 하면서도 정신을 못 차리고 몰래 하나둘씩 낚시장비를 사서 독서실에 가져다 두곤 공부하는 친구를 꼬드겨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갈아타고 몇 시간씩이나 걸려 경기도권에 있는 낚시터를 다녔습니다. 주로 배스낚시를 다녔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군산, 청산도, 안동 등 낚시 여행도 다녔습니다.

버스를 타고 자주갔던 양주의 송어낚시터, 친구와 함께 기차 타고 떠난 안동 배스 낚시 여행

 

 

(2014~2015)

 또다시 임용이란 문턱에 좌절하던 중 대구에 있는 기간제 교사 자리 제안이 들어와 대구에서 4개월가량 근무를 하며 저는 다시금 자유롭게 낚시를 하겠구나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대구로 떠났습니다. 일부러 월세방도 퇴근 후 낚시를 가기 좋은 곳으로 골라서 항상 퇴근 후면 낚시를 하러 자전거를 타고 달려갔습니다.

퇴근 후 다양한 어종들을 만났던 금호강. 대형 강준치들은 손맛이 괜찮았다.

 

 이 시절 제 인생의 하이라이트라고 뽑는 순간 중 한순간이 이때 있었는데,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느라 선선해진 9월의 오후, 날씨가 너무 좋아서 학교 뒤편에 있는 조그마한 절벽을 낀 강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근처에 민가는 물론 사람도 전혀 없는 아주 조용한 곳에서 혼자 차분하게 라디오를 들으며 붕어낚시를 하고 있었는데요. 저녁이 내리고 잔잔한 바람이 불자 제 주변에 있던 반딧불이들이 한순간에 날아올라 너무나 황홀한, 아름다운 광경을 선물받았었습니다. 아직도 그때 느낀 행복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어요. 완벽한 순간이였습니다.

붕어 낚시를 즐겼던 아주 고요한 작은 수로(붕어도 배스도, 반딧불이도 서식하는 조용한 곳)

 

 

(2015~2016)

 제게 임용의 문턱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낚시를 너무 즐긴 탓이기도 하겠죠. 이때부턴 마음을 고쳐먹고 1년 동안 기간제로 근무할 학교를 서울에서 찾았습니다. 학교에서 근무하며 친해진 동생과 함께 이따금씩 낚시를 떠나곤 했지만 이번 임용고시는 정말 중요했고 시험을 마치자마자 차곡차곡 쌓인 낚시에 대한 열망을 송어 낚시터로 가서 풀어냈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그 와중에 장성까지 가서 지인이 잡은 배스, 손맛을 즐기러 가끔 들린 실내 낚시터

 

 

(2017)

  드디어 인생의 가장 큰 허들이었던 임용을 넘었습니다. 어머님의 추천과 낮은 경쟁률로 인해 강원도를 선택해서 임용을 보았고 난생처음으로 지인도 없는 강원도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첫 발령지는 동해시였습니다. 이때까지 동해시라는 곳의 존재조차 몰랐던 저는 바로 지도를 켜서 근처에서 어떤 낚시를 할 수 있을지 찾기부터 했답니다. 더 이상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려운 곳으로 왔지만 군 입대를 앞두고 차량 구매도 맞지 않는 것 같아서 두발 달린 이동 수단을 선택했습니다. 시트 아래에는 낚시가방을 넣고, 낚싯대는 전용 벨트를 감아 등에 메고 다녔습니다.

저에게 발이 되어 주었던 베스파 프리마베라125cc, 장거리 낚시여행을 떠나면 이렇게 짐을 싣고 다녔다.

 

 동해에선 돌삼치 낚시, 우럭 낚시, 광어 낚시, 강릉, 삼척, 안동으로 가서 배스낚시를 하기도 했고 정말 이 땐 공부란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았습니다. 스쿠터를 타고 멀리 안동으로 배스 낚시여행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꾸준히 즐겼던 배스 낚시, 가끔씩 들른 붕어손맛터에서 날 반겨주던 고양이

 

 그리고 에깅낚시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바다낚시에 있어 정말 어려운 부분 중 하나인 테트라포드도 이때부터 조금씩 극복해 나갔습니다. 위험하지만 원칙을 지켜서 다니고 항상 긴장하고 이동합니다.

하드락피싱, 무늬오징어 에깅 장비

 

 

(2018)

 에깅 낚시에 너무나 빠져버린 저는 겨울방학에 일본 오키나와로 낚시여행을 떠났습니다. 처음으로 혼자 나가보는 해외였고 만반의 준비를 해서 갔지만 조과는 아쉬웠습니다.(다행히 꽝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해외에서 낚시를 해보는 경험은 너무나 신선했고 이 계기로 오키나와를 너무나도 좋아하게 된 저는 이후 오키나와 여행만 2번을 다녀왔습니다.

낚시 짐만 한가득, 꿈만 같았던 국외 낚시여행

 

 그해 여름은 스쿠터에 짐과 낚싯대를 한가득 싣고 전국 일주처럼 제주도까지 낚시여행도 다녀왔답니다.

제주도로 향하는 베스파, 6박 7일간의 낚시여행 겸 전국 일주

 

 

(2019~2020)

 낚시 인생의 최고 암흑기가 찾아왔습니다. 늦은 나이에 군인이 되었습니다. 군 입대로 휴가 시기가 맞으면 겨울에 한두 번 나와서 송어낚시를 가는 게 전부였습니다. 군대에서도 동생들에게 이제껏 해왔던 낚시 스토리를 이야기해 주거나 다들 그렇듯, 관심이 없어 보이더라도 전 열심히 제가 잡았던 고기들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인사관리, 시설관리, PX관리의 일을 다 맡아 하던 군 생활, 휴가 나와서 다닌 송어 낚시

 

 

(2021~2024)

 황금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전역 후 차량을 구매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산천어 루어낚시부터, 봄엔 광어, 여름엔 양태, 가을엔 무늬오징어, 삼치, 겨울엔 볼락, 송어까지 정말 행복한 낚시 생활을 엄청나게 즐겼습니다.

그리운 나의 첫차, 새롭게 시작한 산천어 낚시

 

 그중에서도 무늬오징어를 잡을 수 있는 에깅 낚시의 매력에 빠져 가을철에는 모든 일정을 다 제쳐두고 낚시가 가능한 날씨라면 항상 나갔습니다. 예보에 없던 폭우로 발목까지 잠길 정도로 비가 오는 상황에서도 낚시를 한 적도 있고, 미끄러운 테트라를 잘못 밟아서 미끄러진 적도, 테트라 밑에 들어가 있는 취객을 발견하고 119에 신고한 적도, 비싼 선비를 내고 배낚시를 하다가 멀미가 와서 이게 노동인지 취미인지 고민해 본 적도, 해외여행 중간에서도 아주 잠깐 낚시를 하려고 엄청난 준비를 한 적도, 불편한 차에서 밤을 지새운 적도.. 정말 동해안의 수많은 곳들을 돌아다녔고 다양한 시간 다양한 장소에서 낚시를 했습니다.

유난히 무늬오징어가 많이 잡히던 해, 큰 고등어도 많이 잡혔다.
직접 잡은 전갱이와 고등어로 만든 초밥과 무늬오징어 회덮밥
에기에 돈 쓴 만큼 무늬오징어로 채워지는 냉동실..

 

 이제 어느덧 경험과 노련함이 쌓여 수많은 낚시인들과 방파제 위에 올라서면 나름 상위권의 조과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요즘 무늬오징어를 유독 많이 잡아서 기세 등등합니다.)

 

 

(2025~) 예정

 결혼을 준비하며 원주로 이동할 생각에 제 낚시 인생의 황금기가 막을 내리는듯했지만 너그러운 예비신부님의 이해와 배려로 2년간은 동해에서 더 지내기로 했습니다. 매일매일이 여행 같은 동해에서의 삶이 너무나 즐겁기에 동해에서 조금 더 지내며 글도 조금씩 써내려 가려 합니다. (새로운 나의 여정도, 지나온 즐거운 나의 추억도)

너무 아름다운 동해바다의 일출과 일몰

 

 쓰다 보니 제 일대기를 쓰는 것과 같았습니다. '나 26살 때 뭐 했지?' 생각 해 보면 기억이 잘 안 나지만 클라우드를 뒤져보면 역시나 낚시를 했던 사진이 있고 그 사진을 보면 제가 그 당시에 어디에 살고 있었고 무얼 했던 건지, 어떤일이 있었는지 조금씩 기억이 떠오릅니다. 제가 목표로 하는 제 인생 110년 중에 34년이나 낚시에 이토록 빠져 살았다고 생각해 보니 정말 제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네요.

 

 저에게 낚시란 언제나 즐거움이었고 새로운 도전이었으며, 우울하고 힘든 일을 잊고 견디게 해주며, 매일 퇴근 시간에 발걸음을 재촉하고, 항상 긴장되고 설레는 시간을 보내게 해주는 원동력이었습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바닷가에 살게 되면서 낚시를 즐길 기회가 늘어났고 낚시로 인해 고기를 걸어내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을 고요하게 혼자서 만끽할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했습니다. 몇일전까지만 해도 바다를 떠날 생각을 하며 이 글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는데 앞으로도 이 행복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하기만 합니다. 또 겨울이 되면 바다가 성을 내기 시작하고 제 손가락도 콧등도 빨개져서 '이게 뭐 하는 짓이지'란 고민을 하기 시작할겁니다. 그럼 또다시 낚시에 대한 열정이 바다의 수온과 함께 식어가겠지요. 원래 사람 마음은 갈대와 같으니까요. 그때까지 실컷 낚시 다녀야겠습니다!

 

 나에게 낚시란 제 인생의 발자취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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